가을이 되면 고구마를 박스째 사 두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끝부분이 물러지거나 까만 반점이 생겨서 아깝게 버린 경험, 한 번쯤 있으실 거예요. 고구마는 생각보다 보관 조건이 까다로운 채소라서 몇 가지 원칙만 지켜도 한두 달은 거뜬히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오늘은 고구마를 오래 두는 보관법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해 드릴게요.
가장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생고구마는 냉장고에 넣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고구마는 따뜻한 지역에서 자라는 작물이라 10도 아래로 내려가면 냉해를 입습니다. 냉장고에 들어갔던 고구마는 겉보기에 멀쩡해도 속이 딱딱하게 굳거나 심이 생기고, 꺼낸 뒤에는 금방 물러지면서 썩기 시작합니다. 맛도 단맛이 줄고 쓴맛이 돌 수 있으니 생고구마는 반드시 실온에서 보관해 주세요.
고구마가 가장 좋아하는 환경은 온도 12~15도, 습도는 조금 촉촉한 정도의 서늘하고 어두운 곳입니다. 집 안에서는 햇빛이 들지 않는 베란다 안쪽, 현관 근처 수납장, 보일러가 닿지 않는 다용도실 등이 알맞습니다. 반대로 가스레인지 옆이나 바닥 난방이 강한 방은 온도가 너무 높아서 싹이 나거나 수분이 빠져 쪼글쪼글해지기 쉽습니다.
사 온 고구마는 바로 상자에 넣지 말고 먼저 말리는 과정을 거쳐 주세요. 신문지를 넓게 깔고 고구마를 겹치지 않게 펼친 뒤 바람이 잘 통하는 그늘에서 하루에서 이틀 정도 두면 표면의 습기가 날아가고 껍질이 단단해집니다. 이렇게 말리면 작은 상처가 아물면서 곰팡이가 덜 생기고, 고구마 속 전분이 당으로 바뀌어 단맛도 좋아집니다.
이때 흙이 묻어 있다고 물로 씻으면 안 됩니다. 물기가 남으면 곰팡이와 무름병이 생기기 쉽고, 흙은 오히려 고구마 표면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흙이 너무 많이 묻어 있다면 마른 상태에서 손으로 가볍게 털어 내는 정도면 충분하고, 씻는 것은 먹기 직전에 하면 됩니다.
말린 고구마는 한 개씩 신문지로 감싸서 종이 상자에 담아 주세요. 신문지가 습기를 적당히 흡수하고 조절해 주며, 고구마끼리 직접 닿지 않아서 하나가 상해도 옆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상자는 뚜껑을 완전히 닫지 말고 살짝 열어 두거나 옆면에 구멍을 몇 개 뚫어 공기가 통하게 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비닐봉지나 밀폐 용기는 습기가 갇혀서 금방 무르니 피해 주세요.
보관을 시작한 뒤에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상자를 열어 상태를 확인하는 습관을 들여 주세요. 끝이 물렁해졌거나 곰팡이가 핀 고구마가 있다면 바로 골라내야 다른 고구마까지 상하지 않습니다. 살짝 물러진 정도라면 그 부분을 넉넉히 잘라 내고 먼저 요리해서 드시면 됩니다.
까만 반점이 생긴 고구마는 조금 주의가 필요합니다. 반점이 작고 표면에만 있다면 주변까지 넉넉하게 도려내고 먹어도 되지만, 속까지 검게 번졌거나 먹었을 때 쓴맛이 난다면 아깝더라도 버리는 것이 안전합니다. 상한 고구마의 쓴맛은 익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보관 중에 싹이 나는 경우도 있는데, 고구마는 감자와 달리 싹에 독성 성분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싹을 떼어 내고 먹어도 괜찮습니다. 다만 싹이 자라는 동안 영양분과 수분이 빠져나가 식감과 단맛이 떨어지니 되도록 빨리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싹이 많이 난 고구마는 물을 담은 컵에 꽂아 두면 예쁜 수경 재배 화분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한 번에 많이 쪄서 남은 고구마는 이제 냉장고를 활용할 차례입니다. 익힌 고구마는 완전히 식힌 뒤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 보관하면 2~3일 정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그보다 오래 두고 싶다면 냉동 보관이 정답입니다.
냉동할 때는 찐 고구마를 껍질째 또는 껍질을 벗겨 한 번 먹을 만큼씩 랩으로 싸고, 지퍼백에 넣어 공기를 최대한 빼서 얼려 주세요. 이렇게 하면 한 달 정도 보관이 가능합니다. 먹을 때는 냉장실에서 천천히 해동하거나 전자레인지에 1~2분 데우면 되고, 으깨서 냉동해 두면 고구마 라떼나 샐러드, 이유식 재료로 바로 쓰기 편합니다.
정리하면 생고구마는 냉장고 대신 12~15도의 서늘하고 어두운 곳에, 씻지 말고 하루 이틀 말린 뒤 신문지에 하나씩 싸서 상자에 보관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익힌 고구마만 냉장·냉동을 활용하시면 됩니다. 이번 가을 고구마는 끝까지 버리는 것 없이 달콤하게 즐겨 보세요.